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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와 함께 춤을』 리뷰 (감정조종, 관계의 경계, 자기회복)

영원한 우주 2025. 4. 20. 10:33

 

나의 리듬을 찾을 수 있는 독서 이미지

1. 그들은 왜 악마가 되었는가-감정 조종

『악마와 함께 춤을』에서 말하는 ‘악마’는 단순히 악의로 가득 찬 인물이 아니다. 그들은 종종 다정하고 따뜻하며, 누군가에게는 구원처럼 등장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다정함은 혼란으로, 그 친절은 통제로 변해간다. 그리고 결국, 관계는 “상처가 사랑처럼 가장된 리듬” 속에 빠져든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가스라이팅’이나 ‘감정 조종’은 그저 상대가 나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그들은 조종자가 되기 이전에 자기 안의 상처를 직면하지 못한 채 타인을 통해 그것을 반복 재현하는 사람들일 수 있다.

이 책은 말한다. “악마는 타고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대부분의 조종자들은 자신도 과거 어딘가에서 애매한 관심, 조건부 애정, 감정적 불안 속에 방치되었던 경험이 있다. 그래서 사랑이란 언제나 “불안정하고 변덕스러운 것”이라는 믿음을 마치 생존법처럼 안고 살아온다.

문제는 그들이 자기 상처를 정직하게 마주하지 않고 타인의 감정을 통해 그 리듬을 되풀이하려 할 때 생긴다. 자신이 통제하고 있을 때에만 안정감을 느끼고 상대를 무너뜨릴 때 마치 ‘내가 버려지지 않을 수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모든 관계에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확히 나뉠 수는 없다. 어쩌면 제삼자의 눈엔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누군가의 불완전한 내면을 계속해서 타인의 무너짐 위에 쌓아가고 있다면 그 리듬은 악마의 춤이 될 수밖에 없다.

이 글은 그들을 ‘악인’으로 몰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그 춤에 끌려 들어가게 되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다. 악마는 멀리 있지 않다. 가끔은 너무 친절하고 너무 이해심 많은 얼굴을 하고 우리 옆에 앉아 있다.

2. 나는 왜 그와 함께 춤을 추었는가-관계의 경계

그들이 악마라면, 나는 왜 그 악마와 춤을 추었을까. 이 질문은 쉽게 던질 수 있지만, 정직하게 마주하기는 쉽지 않다. 나를 가해자에게 끌려가게 만든 건 단지 착함이나 순진함이 아니라, 내 안에 오래도록 자리한 ‘익숙한 리듬’ 때문이다.

그들은 다정했고, 이해해 주는 척했고, 나의 상처에 공감하는 척했다. 그 다정함이 가짜인 줄 알지 못했다. 그보다는, 내가 “이 정도는 참아야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라고 오래전부터 스스로를 설득해 왔기 때문이다.

나는 그 리듬에 익숙했다. 애매한 거리, 확신 없는 말, 조건부 애정— 그건 상처였지만, 동시에 내게는 익숙한 감정이었다. 그 익숙함이 나를 조종자에게 허락하게 만든 것이다.

김현수 작가는 말한다. “조종당하는 사람은 조종자에게 끌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의 결핍에 끌리는 것이다.”

나 역시 누군가의 감정에 맞춰야 사랑받을 수 있었고, 상대가 화내지 않게 하려고 조심스럽게 살았다. 내 감정은 늘 나중이었고, 내 말보다 그들의 반응이 먼저였다. 그렇게 살다 보니, 누군가 나를 침묵하게 만들고 내 마음을 배제해도 “이건 원래 그런 거야”라고 여기는 데 익숙해졌다.

『악마와 함께 춤을』은 말한다. “감정 조종자에게 끌리는 사람은 약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억눌러온 경험이 많은 사람이다.”

나는 그 리듬에 익숙했다. 애매한 거리, 확신 없는 말, 조건부 애정— 그건 상처였지만, 동시에 내게는 익숙한 감정이었다. 그 익숙함이 나를 조종자에게 허락하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나도 어느 순간 그 춤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상대를 잃지 않기 위해 나를 지우고, 상대의 기분을 살피느라 내 감정을 표현할 타이밍을 놓쳤고, 결국은 내 안의 말들이 굳어버렸다.

그 춤은 내가 고른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 춤을 허락했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착각했고, 그만두는 것이 실패처럼 느껴졌고, 무너지더라도 관계만은 유지해야 한다는 두려움에 오래 머물렀다.

이제는 안다. 그 춤에서 나오는 첫걸음은 상대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왜 거기 있었는지를 이해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을.

3. 춤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경계의 힘-자기 회복

관계에서 벗어난다는 건 꼭 이별을 의미하지 않을 때가 많다. 특히 감정 조종이 반복되는 관계에서 진짜 벗어난다는 건, 상대를 끊어내는 것이 아니라, 나와의 경계를 다시 세우는 일에 가깝다.

『악마와 함께 춤을』에서 김현수 작가는 이 ‘감정적 경계 설정’이 회복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조종자와의 춤을 멈추는 것은 그 사람을 바꾸는 데 있지 않다. 내가 어떤 감정을 내 안에 허락하고, 어떤 경계에서 멈출지를 정하는 데 있다.

감정 조종자는 늘 상대의 죄책감과 인정욕구를 파고든다. 애매하게 부탁하고, 애정을 조건처럼 걸고, 혼란스럽게 거리를 조절하면서 상대의 정서를 뒤흔든다. 나도 한때 그런 관계를 놓지 못하고 상대의 리듬만 따라간 적이 있었고 분명 그 관계는 내게 좋은 결말이 아니었다.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거절”을 연습하는 것이다. 아니요, 지금은 어렵습니다. 그 말 한마디가 곧바로 관계를 끝내지 않아도 나를 보호하는 울타리가 되어준다.

또 하나는 감정을 말로 정확하게 표현하는 훈련이다. “나는 지금 이런 말이 불편했어.” “나는 나를 배려받고 싶어.” 이런 표현은 상대를 바꾸기 위한 게 아니다. 내 감정이 존중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걸 나 자신에게 확인시켜 주는 선언이다.

김현수 작가는 말한다. “감정 조종자에게서 벗어나려면, 관계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 내 감정을 먼저 살펴보는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이제 알게 됐다. 그 춤에서 빠져나오는 데 거창한 결단은 필요하지 않았다. 작지만 단호한 경계, 그리고 나 자신을 향한 다정한 신뢰만이 그 춤을 멈추게 할 수 있었다.

이제는 내 감정의 주도권을 다시 내 손에 쥐고 싶다. 누구의 리듬에도 휘둘리지 않고, 내가 나와 함께 춤출 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길들여져서 이미 편안해져 버린 묘한 익숙함을 버리고 나 자신으로 일어서려면 나 자신의 경계를 찾아야만 한다.

김현수 작가는 말한다. “경계는 누군가를 밀어내기 위해 필요한 게 아니라, 내가 나를 더 잘 느끼기 위해 필요한 거다.”

그래서 경계를 세우는 건 끝이 아니라 나를 다시 만나는 연습의 시작이다. 그 안에서 나는 내 감정을 더 잘 듣게 되고 내가 어떤 관계를 원하는 사람인지 비로소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한다. 그 춤에서 빠져나왔다는 건 앞으로 누구와 어떤 리듬으로 춤을 추고 싶은지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4. 결론-이제는 내가 나의 리듬으로 춤추기 위해

『악마와 함께 춤을』은 우리가 어떤 리듬에 휘말려 상처받았는지를 정면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그리고 그 춤이 단지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내 안에 자리했던 감정의 패턴, 허용했던 익숙함, 외면했던 나 자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조심스럽게 꺼내 보이게 만든다.

나는 더 이상 내 감정을 무시한 채 누군가의 기분에 맞춰 움직이고 싶지 않다. 내가 춤을 추고 있다면 그건 내가 고른 리듬, 내가 편안한 발걸음이어야 한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내 감정을 누르고 경계를 허물며 “괜찮다”를 반복하던 시간은 이제 조금씩 멈춰도 좋다. 내가 나를 존중할 때 비로소 타인과도 건강한 리듬을 나눌 수 있다.

김현수 작가는 말한다. “우리는 결국, 어떤 사람과 춤을 출 것인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존재다.” 이제 나는 그 선택 앞에 있다. 누구와도 상처를 반복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나만의 리듬, 나만의 무대에서 내 감정의 주인으로 다시 서보고 싶다.

이 책은 그런 나를 부드럽게 깨워준다. 그리고 조용히 말해준다. “그 춤에서 빠져나온 당신, 이제 진짜 당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도 괜찮다고.”

김현수 작가는 책의 마지막에서 이렇게 말한다. “상처를 준 사람과 헤어지는 것도 어렵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건 그 상처를 주는 방식을 익숙함이라 여기며 계속 반복하는 나와 이별하는 일이다.”

이 말은 내게 오래 남았다. 관계를 정리하는 것도 거리를 두는 것도 결국은 내가 나와 맺는 관계를 다시 쓰는 일이구나 싶었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이해받으려고 애쓰지 않고, 나를 더 잘 이해하는 방향으로 관계를 선택하고 싶다. 솔직히 이제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굳이 악마는 아닐 거라며 면죄부를 주며 함께 춤추는 짓은 그만하고 싶다. 내 리듬에 관심이 없는 자와 함께 춤추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악마와 함께 춤을』은 결국 내가 어떤 관계 안에서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싶은지를 처음부터 다시 묻는 책이다. 그 춤을 멈추고, 이제는 내 감정의 리듬에 따라 천천히 걸어가도 괜찮다고, 이 책은 다정하게 속삭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