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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피형 인간』 리뷰 (관계 회피, 감정 억제, 애착 유형)

영원한 우주 2025. 4. 20. 18:04

자아 성찰을 부르는 독서환경 이미지

1.회피는 나약함이 아니라 방어다

회피형 인간을 만나면, 정말 미칠 것 같죠. 거리를 좁히려고 다가가면 더 멀어지고, 감정을 털어놓으면 대답 대신 벽이 돌아옵니다. 그런데 더 답답한 건, 그들이 보이는 “나는 괜찮은데?” 하는 태도예요. 감정적인 대화는 회피하고, 정작 문제의식조차 느끼지 못하는 모습에 남아 있는 사람은 점점 고립되고 지쳐갑니다.

하지만 『회피형 인간』의 저자 박한선 교수는 이런 회피적인 반응이 단순히 이기적이거나 무관심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방식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회피는 본능적인 생존 전략일 수 있다.”

책은 인간의 애착 유형 중 회피형이 어릴 때부터 “기대는 곧 실망이다”라는 감정을 반복적으로 학습한 결과라고 설명합니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을 가졌지만 그 기대가 거절당하거나,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더 큰 상처로 되돌아왔던 경험이 누적된 거죠.

그래서 회피형은 자기도 모르게 “차라리 혼자 있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리고 감정 자체를 회피하거나 억제하는 습관을 갖게 됩니다.

이건 그 사람이 약하거나 비정상이라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보호하는 유일한 방식이었기 때문</strong이에요. 뇌의 구조, 스트레스 반응, 애착 시스템까지 회피형 인간은 관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거리를 두는 법’을 먼저 익힌 사람들이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회피가 정당하다는 건 아니에요. 다만 이 책은, 우리가 왜 상처받는지도 이해하면서, 그들이 왜 감정을 피하는지도 같이 들여다보자고 제안합니다.

감정 없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에 접근할수록 더 불안해지는 사람. 그게 회피형 인간의 진짜 속마음일지도 몰라요.

2.감정을 느끼는 게 두려운 사람들

회피형 인간과 가까이 지내본 사람은 압니다. 말을 해도 들리지 않고, 다가가도 닿지 않고, 무슨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는 듯한 그 모습에 어느 순간, 나 혼자만 사랑하고 나 혼자만 노력하는 것 같은 지독한 외로움에 빠진다는 걸요.

『회피형 인간』은 이 외로움의 실체를 보여줍니다. 박한선 교수는 회피형 애착을 단순한 성격이나 기질이 아니라 “감정을 느끼는 것이 곧 위험이라고 여기는 깊은 불안의 패턴”이라고 설명합니다.

회피형 인간은 감정 자체를 회피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감정은 단지 분노나 슬픔 같은 부정적인 감정만이 아닙니다. 사랑, 친밀감, 기대, 설렘 같은 긍정적인 감정조차도 이들에게는 불안의 출발점이 될 수 있어요.

왜냐하면 그들은 어릴 때부터 학습해왔기 때문이에요. “기대는 곧 실망이다.” 누군가에게 다가가면 버려졌고, 기대했던 사랑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도움을 청하면 오히려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던 경험들. 그 모든 기억이 쌓이고 쌓여 “나는 기대하지 않아야 안전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만든 거죠.

그래서 회피형은 감정이라는 것 자체를 “예측 불가능하고, 내 통제를 벗어나고, 결국 나를 더 아프게 만드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이들은 감정의 내용보다 감정이라는 상태 자체를 회피해요. 좋은 감정도 결국 기대를 만들고, 기대는 곧 실망이 되기 때문에, 기쁘고 좋아도 거리를 두려 하고, 사랑을 느껴도 차갑게 반응하는 거예요.

그 모습은 무심하고 냉정해 보이지만, 사실은 자기 안의 감정을 다룰 줄 모르는 사람들의 **조용한 방어**예요. 그들은 감정을 몰라서가 아니라, 너무 잘 알아서 피하는 사람들입니다. 감정의 끝이 늘 상처였기 때문에 그 시작조차 허용하지 않으려는 거죠.

회피형 인간의 주변 사람입장에서는 말을 걸어도 대답이 없고, 다가가도 차가운 반응만 돌아올 때  사랑받지 못하는 게 아니라 존재조차 부정당하는 기분에 빠지게 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그런 당신에게 말해줍니다. “회피형은 감정 없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이 너무 무서운 사람입니다.” 그 말 한 줄이 관계의 모든 풍경을 바꾸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당신이 겪어온 혼란이 당신 잘못이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줄 수는 있어요.

그러니까 감정을 자주 말하고 싶은 당신,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고 싶은 당신이 잘못된 게 아니에요. 다만 지금의 상대는 그 감정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일지도 몰라요.

감정을 느끼는 게 두려운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는 건 내 감정을 스스로 소중히 여겨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걸 위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는 건 당신이 이미 너무 잘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3.연결을 원하는데 가까워질수록 멀어진다

가까워지려고 하면 더 멀어져요. 사랑한다고 표현하면 불편해하고, 대화를 시도하면 피하거나 딴청을 부리고, 서운하다고 말하면 오히려 내 감정이 과한 것처럼 여겨져요. 그 사람에게 다가갈수록 나는 점점 더 ‘혼자 말하는 사람’이 되는 기분이었어요.

『회피형 인간』은 이 기묘하고 슬픈 거리감의 원인을 알려줍니다. 박한선 교수는 회피형 애착의 특징 중 하나가 “연결을 원하면서도, 그 연결이 깊어지는 순간 불안을 느끼는 것”이라고 말해요.

회피형은 애초에 관계에 깊이 개입하지 않으려 해요. 왜냐하면 가까워질수록 “내 감정이 들키고, 그 감정을 감당해야 하고 그 결과 상처받게 될까 봐” 두려운 거예요. 그래서 스스로도 모르게 ‘거절당하기 전에 물러나는’ 반응을 보입니다.

이들은 연결을 싫어하지 않아요. 오히려 누구보다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누군가에게 안정적으로 기대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하지만 그 욕망을 꺼내는 순간 상처 입을까 봐 처음부터 욕망을 표현하지 않는 길을 선택해온 사람들이죠.

그래서 함께 있는 것 같지만 마음은 멀고, 사랑을 주고 있지만 교감은 사라지고, 존재는 곁에 있는데 온기가 느껴지지 않아요. 회피형 인간과의 관계는 종종 ‘정서적 단절’이라는 말로 요약되지만 사실은 아주 조용한 상실이 반복되는 과정이에요.

가까워질수록 더 멀어지는 이 감정은 절대 당신만의 착각이 아닙니다. 회피형인간의 냉담함은 당신 탓이 아니라 그가 자기 감정을 끝까지 꺼내지 못하는 구조적인 회피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어요.

회피형에게 가장 무서운 순간은 누군가가 자기 마음에 진짜로 가까워지려는 때입니다. 마음을 읽히는 것, 감정이 들키는 것, 의존하고 싶은 자신을 마주하는 것 이 모든 게 회피형에게는 일종의 ‘정서적 위기 상황’으로 작용합니다.

가까워진다는 건 관계에서 “나는 너를 믿고 있다”는 신호예요. 하지만 회피형은 그 믿음이 언제든 배신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연결됩니다. 어릴 적 경험이나 과거의 관계에서 기대가 무너졌던 기억이 깊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상대가 다가오면 기쁘고 설레는 대신 “어떻게 반응해야 하지?” “지금 기대하면 안 돼” 같은 경계 반응이 먼저 올라옵니다. 그 감정의 깊이에 맞춰 반응할 준비가 안 된 거예요. 가깝다는 건 따뜻함이 아니라 감정이 무너지거나 실망할 가능성에 노출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거죠.

결국 회피형은 가까워지려는 순간 감정이 ‘통제불가능한 상태’가 될까 봐 불안해집니다. 그래서 반사적으로 거리를 두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거나 감정을 피하고 혹은 갑자기 차가운 말과 행동으로 밀어내기도 합니다.

4.결론:회피형 인간과 살아간다는 것

『회피형 인간』은 그들을 이해하게 해주는 책이지만, 동시에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가 얼마나 지치고 무너질 수 있는지도 조용히 말해줍니다.

회피형은 감정을 모르지 않아요. 그들은 감정을 너무 잘 알아서 그 감정이 곧 상처로 이어질까 봐 애초에 꺼내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그 옆에 있는 사람은 자꾸만 외로워지고 혼란스러워져요. 마치 온기를 내밀었는데 벽에 닿고 되돌아오는 느낌. 말을 걸었는데 공허한 침묵만 돌아오는 느낌. 함께 있음에도 고립감을 느끼는 관계는 어떤 이별보다 더 깊은 소진을 남깁니다.

박한선 교수는 말합니다. “회피형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의 옆에 있는 사람은 자기 감정을 보호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한다.”우리는 상대를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내가 이 관계 안에서 나를 잃지 않을 방법은 선택할 수 있어요.

감정을 표현하되 반응을 기대하지 않는 연습. 상대를 조종하려 하지 않고 그 사람이 감정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관계의 거리를 재조정하는 용기.어쩌면 회피형 인간과의 관계란 사랑보다는 존재의 균형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회피한다면 나는 더 이상 쫓지 않고 나의 온도와 나의 속도로 나를 돌보는 쪽을 선택하는 것.

그 사람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이미 충분히 했습니다. 이제는 나를 이해하고 지키는 쪽으로 그 마음을 돌려줘도 괜찮습니다.그게 끝은 아니에요. 그게 바로 당신이 ‘감정의 주인’이 되는 시작일 수 있어요.

그리고 이 글을 다 쓰고 나서야 내가 왜 이렇게 힘들었는지를 조금 더 선명하게 알게 되었어요. 나는 그 사람을 너무 사랑해서 가까이 가려 했고, 그 사람은 너무 두려워서 더 멀어졌던 거예요.내가 감정을 표현하면 부담스럽다고 하고, 거리를 두면 무심하다고 말하던 그 구조는 애초부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는지도 몰라요. 나는 계속 관계의 저울을 혼자서 맞추려 했고, 그 사람은 저울 위에 올라오는 법조차 배우지 않았던 거죠.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요. 이렇게 기울어진 관계 속에서 내가 나를 먼저 챙기는 게 잘못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 선택이 누군가에게는 차가움처럼 보여도 나에게는 생존이고, 회복이고, 아주 조용한 사랑이라는 것.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 했던 내가 이제는 나를 먼저 지키기로 마음먹었다면, 그건 결코 이기적인 게 아니라 내가 나와 맺는 건강한 관계의 시작일 거예요.